
문화는 생활양식이다.
이용교(광주대학교 교수, 복지평론가)
사회복지학을 가르치고 연구하느라, 남들이 말하는 문화생활을 즐기지 못한 지가 오래이다. 평소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문화예술을 즐기지 못한 지가 꽤 되었는데, ‘사회복지와 문화예술교육이 만나는 길’이란 숙제를 하느라 더 여유가 없다. 아이러니 하지만, 한 복지학자의 생각을 문화예술인과 나누는 것도 괜찮을 듯하여 이 글을 쓴다.
사회복지와 문화예술교육이 만나는 길을 찾기 위해서는 사회복지와 문화예술의 본질을 더듬어 보아야 한다.
사회복지는 무엇이고, 문화예술은 무엇인가?
먼저 문화예술을 보면, 다양한 정의가 있겠지만, “문화는 생활양식이다”라는 말이 함축하는 바가 크다. 문화를 고급문화, 대중문화로 나누기도 하지만, 문화는 한 시대의 생활양식을 반영하는 것이고, 바로 생활양식 그 자체라고 볼 수 있다.
흔히 지배층의 문화가 민중에게 널리 확산되기도 하고, 민중의 삶이 지배층으로까지 확장되기도 하지만, 문화는 생활양식과 따로 떼어놓을 수 없기 때문이다.
문화 중에서도 문화예술은 보다 정형화되고 도식화된 문화가 아닌가 싶다. 공연예술이나 무대예술이라는 표현에서 보는 바와 같이 일상생활과는 다소 분리되고 정제된 문화가 여기에 속할 것이다.
생활양식으로서 문화는 모든 사람이 삶속에서 누리는 것이라면, 문화예술은 삶의 여유에서 나온 듯하다. 일상의 노동과 문화예술이 혼재된 경우도 있지만, 대체로 사람들은 노동의 손길을 놓은 다음 마음에 여유가 있을 때 문화예술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문화예술을 즐기기 위해서는 시간의 여유뿐만 아니라 약간의 경제적인 뒷받침도 필요한 것이 현실이다. 복지는 생활이다.
그럼 복지는 무엇인가?
잔여적 의미의 복지는 빈곤, 노령, 장애 등으로 스스로 자신의 삶을 감당하기 어려운 사람을 위해서 국가와 민간이 경제적 사회적으로 돕는 것이다. 현대 사회가 되면서 모든 사람이 노령, 질병, 실업 등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기에 인간의 기본적 욕구를 국가가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지만, 한 사회의 기초생활에 대한 보장은 여전히 복지의 중대한 관심사항이다.
잔여적 의미로 보면 복지는 일부 가난한 사람의 기초적인 의식주를 보호하는 수준이지만, 제도적 의미로 보면 모든 국민이 인간다운 최저생활 이상을 보장받는 것이라고 볼 수 있겠다. 이렇게 볼 때 “복지는 생활이다”.
한 사회의 복지수준이 좋다는 것은 시민의 삶의 질이 적절히 보장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에서 시민의 삶의 질은 그 시대의 경제사회 수준에서 볼 때 인간다운 생활을 누릴 수 있는 수준이어야 할 것이다.
복지와 문화가 만나는 길
문화는 생활양식이고, 복지도 생활이라면, 문화는 곧 복지와 통하게 된다.
인간의 욕구를 스스로 혹은 가족의 힘으로 시장에서 충족하지 못할 때 복지서비스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모든 시민이 인간다운 삶의 질을 제도적으로 보장받기 위해서 복지가 필요하다면, 문화예술은 복지의 중요한 요소가 된다.
최근 선진국은 물론이고 세계 여러 나라에서 문화와 복지와의 만남을 강조하고 있다. 필자도 10여년 전 청소년문화에 관심 있는 사람들과 ‘문화복지아카데미’를 개최하였고, 현재도 문화예술위원회의 ‘문화바우처사업’ 등에 관여하고 있다.
이러한 사업들은 문화와 복지가 어떻게 만날 것인지에 대한 좋은 선례이다. 복지와 문화예술의 만남은 상생의 관계를 형성해야 한다.
가장 쉽게 만날 수 있는 것은 소외계층에게 문화예술을 향수할 기회를 주는 것이다. 가난은 경제적인 것에 한정되어 있지 않다.
지출에서 식료품비가 차지하는 비율을 나타내는 엥겔계수가 높은 사람은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느라 그 시대의 주류 문화를 즐길 여유가 없다.
문화예술은 빠르게 상업화되어서 이를 누리기 위해서는 상당한 지출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문화바우처사업을 통해서 소외계층에게 문화예술의 향수할 기회를 늘리는 것은 지금도 당장 필요하고 앞으로도 필요하다.
하지만 소외계층에게 문화예술의 향수 기회를 늘리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이것은 목마른 사람에게 물을 한 그릇 주는 것과 같은데, 목마른 사람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마르지 않는 샘물이다. 필요할 때 언제든지 마실 수 있는 샘물과 같이, 문화예술은 생활 속에 있어서 쉽게 누릴 수 있어야 한다.
문화예술을 쉽게 누리기 위해서는 문화예술을 창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운동을 진정으로 좋아하는 것은 운동경기를 관람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직접 운동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 하듯이, 문화예술도 몸으로 익혀야 할 것이다.
하지만 평소 경제적으로 어렵거나, 장애 혹은 노령 등으로 주류 문화예술과 상당한 거리를 가졌던 사람이 몸으로 익히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문화예술을 몸으로 익히기 위해서는 상당기간동안 교육과 훈련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문화예술의 대중화를 위해서는 문화예술교육의 확산이 선행되어야 한다.
문화예술의 대중화를 위해서 문화예술교육의 확산은 자명하지만, 이를 어떻게 확산시킬 것인지에 대한 해답을 찾기는 쉽지 않다. 문화예술 능력을 갖춘 사람은 적고 필요로 하는 대상은 많으며, 두 집단은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때 생각할 수 있는 한 방법은 문화예술과 복지를 매개할 수 있는 사람을 찾는 것이다.
예컨대, 인간문화재가 방방곡곡 경로당을 찾아다니면서 공연을 하기는 어렵지만, 한 인간문화재가 제자들을 키우고, 그 제자들이 관심 있는 대학생을 포함한 젊은이들에게 널리 가르쳐서, 그 사람들이 가까운 경로당을 찾아서 공연을 한다면 가능한 일이다.
여러 매개자들 중에서도 대학생을 포함한 젊은이들의 중요성은 매우 크다. 예컨대, 이 땅에서 수 천년동안 내려왔던 풍물이 김덕수패에 의해서 사물놀이로 정립되고 짧은 시기에 전 세계로 확산된 사례가 의미하는 바가 크다. 김덕수패가 대학생을 포함한 젊은이들에게 사물놀이를 전수하였기에, 사물놀이는 전세계로 확산되었던 것이다. 이점에서 광주문화예술위원회와 광주대학교 참여복지센터가 협력하여 사회복지 대학생과 현장 사회복지사를 대상으로 문화예술교육을 실시하려는 교육은 그 의미가 크다. 사회복지를 배우고 익히는 사회복지 대학생과 이미 사회복지현장에서 뿌리를 내린 젊은 사회복지사들이 문화예술을 함께 배우고, 이를 현장에 확산시키는 방법을 모색하게 될 것이다.
문화예술에 전문성을 갖춘 문화예술인과 사회복지에 대한 이론과 기술을 갖춘 젊은 (예비)사회복지사들이 함께 문화예술을 익히고 확산시키면 궁극적으로 복지대상자의 삶의 질도 더욱 높아질 것이다.
문화는 생활양식이고 복지도 생활이므로 이미 문화와 복지는 하나이다. 한 실체의 다른 측면인 문화와 복지는 상생의 관계를 모색해야 한다.
사회복지학도와 사회복지사를 위한 문화예술교육 아카데미가 상생의 꽃을 피우기 위한 배움터가 되길 희망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