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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만명 사회복지사를 <오방선생>에 초대합니다...

밝은얼굴 2014. 3. 27. 09:23

70만명 사회복지사께 연극 <오방선생>을 소개합니다.

오방 최흥종 선생의 생애와 활동을 연극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우리나라 사회복지계의 큰 어른인 오방선생을

연극을 통해서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광주광역시사회복지사협회는 4월 3일 20시에

광주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리는 <오방선생>에

회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참가를 원하는 회원은

kj-kasw@hanmail.net

로 3월 28일까지 이름/소속 기관/핸드폰번호로

신청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한 기관에서 여러명이 신청하려면 한 사람이

참가자수를 함께 써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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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광주매일신문]

백년의 시간을 뛰어넘는 오방 선생의 이야기
박윤모 칼럼 문화 愛 빠지다
광주시립극단 예술감독


입력날짜 : 2014. 03.26. 20:09

 

사람이 역사다.

오방 최흥종 선생을 떠올리면 드는 생각이다. 한 시대를 선 굵게 관통하며 살아간 한 사나이. 목사, 독립운동가, 사회사업가 등 한마디로 그를 규정하기는 어렵다. 그의 일대기를 한번 나열해보겠다. 아마도 지면을 꽤 차지할 것이다.



1880년 전라남도 광주읍 불로동에서 태어나 24세까지 광주 일대에서는 잘 알려진 싸움꾼이었고 건달패였다. 1904년 유진벨 선교사에게 감화를 받아 기독교에 입교하고, 한때 순검이 되었으나 의병들을 몰래 풀어준 뒤 사임했다. 1909년 광주 제중병원에서 포사이드 선교사를 도와 나환자의 치료에 헌신하였으며, 1919년 3·1운동 때에는 만세시위를 하다가 3년간 옥고를 치렀다. 1922년 광주 북문 밖 교회의 목사가 되었고, 같은 해 광주 YMCA의 회장이 되었다. 이후 시베리아 선교사로 갔다가 귀국, 1932년 나환자 단종령이 내려지자 나환자 500여명을 이끌고 경성까지 행진해 총독과 담판을 지었다. 나환자 치료 갱생을 위한 소록도 갱생원을 얻어냈다. 1933년 광주 경양방죽에 걸인들을 집단 수용할 수 있는 걸인촌을 만들고 날마다 솥을 걸고 걸인잔치를 열었다. 1935년 거세수술을 하고 스스로 사망통고서를 낸다. 이후 농촌지도자 육성을 위한 삼애원, 음성나환자 수용시설 나주 호혜원, 폐결핵환자 요양원 송등원 등을 세워 구제 사업을 계속해나간다. 1966년 100일 금식 후 86세를 일기로 영면한다. 5월 18일 광주 시민사회장으로 장례식이 거행된다.



참 많은 일을 하셨다.

지면 관계상 미처 다 적지 못한 그의 행적들이 더 많다. 굵직한 근현대를 겪은 인물이라지만 한 평생을 이렇게 굵게 살 수 있을까? 최흥종, 그는 정말 큰 어른이었다. 국가의 위기나 사회의 부조리한 일이 일어났을 때, 우리는 개탄한다. 쓴 소리라도 한마디 해줄 수 있는 큰 어른이 부재함을 안타까워한다. 그래서 광주의 큰 어른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다. 복지가 큰 화두가 되고 있는 요즘, 그는 백 년 전 이미 복지의 진정한 의미를 알고 있었고, 적극적으로 실천했다.

그런데, 지금 과연 오방 선생을 알고 있는 이가 얼마나 있을까? 우리는 왜 그를 잊고 있었을까?

백 년 전 그를 다시 현재로 모셔와야겠다 생각했다. 2년 전 처음 시립극단에서 연극‘오방선생’을 대본작업을 추진하고, 전국 연극제 희곡상만 5차례 수상한 김창일 작가에게 의뢰를 했다. 초고를 끝낸 뒤 김창일 선생은 손사래를 쳤다. 평생 하신 일이 너무 많다. 그래서 희곡으로 다 옮기기가 너무 어려웠다고. 작가에게 방대한 자료란 상상력을 저해하는 엄청난 부담일 것이다. 실존 인물을 희곡으로 옮기는 작업은 녹록치 않다. 어렵고도 조심스러운 일일 것이다. 다행히 오방 최흥종 선생의 손자인 최 협 前전남대 교수가 뜨거운 응원과 격려를 보내주었다. 이 지면을 빌어 오방 선생의 후손들께 감사드린다. 여하튼 초고가 무사히 나왔고, 연극‘해무’의 김민정 작가의 손끝을 거쳐 6고 각색본이 완성됐다. 창작극 대본을 쓰고 연극 한편을 무대에 올리기까지 꼬박 2년의 시간이 흘렸다.

2014년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물음을 던진다. 다섯 가지를 버린다는 오방(五放)의 의미를 다시금 되새겨보게 한다. 혈육, 사회, 경제, 정치, 종파에 얽매이지 않고 개인의 행복보다는 이웃 사랑을 실천한 오방선생은 2014년 우리에게 말한다. “죽었다고 벌리고 간 썩은 나무에도 햇빛과 빗물은 싹을 틔우게 합니다. 병들고 가난하다고 그저 죽게 버려두는 게 옳소이까?” 오래전 과거의 이야기로 묻혀있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우리에게 던지는 물음일 것이다.



드디어 광주 1백년사 연극시리즈 제 1탄으로 연극‘오방 선생’이 오는 4월 3일-6일 광주문화예술회관 소극장무대에 오른다.

오방 선생을 통해 우리는 과거를 거슬러 이야기하자는 것이 아니다. 과거를 통해 현재의 우리를 들여다보기 위함이다. 우리가 지켜야할 가치에 대한 이야기이다. 격동의 시대를 살아온 한 인간의 고민과 열정, 그리고 실천하는 삶 속에서 씨줄 날줄로 엮어진 우리의 역사가 절로 읽혀지는 좋은 연극이길 바란다. 백년의 시간을 뛰어넘는 오방 선생의 이야기가 관객들에게 큰 울림으로 다가가기를 기대한다.

/광주시립극단 예술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