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교가 오늘 읽은 책-241230] 문영심, 정해룡 평전- 역사의 죄인이 되지 말라, 길, 2024.
[이용교가 오늘 읽은 책-241230] 문영심, 정해룡 평전- 역사의 죄인이 되지 말라, 길, 2024.
필자가 ‘정해룡 평전- 역사의 죄인이 되지 말라’라는 책을 산 것은 한겨레(2024년 11월 17일)의 “봉강 정해룡은 소작인에게도 땅 다 나눈 진짜 어른”이란 기사를 읽은 것이 계기가 되었다.
https://v.daum.net/v/20241117173009822
박정희 정부 시절에 보성군 회천면에서 ‘가족 간첩단 사건’이 있었고, 연루된 사람이 사형당하거나 감옥살이를 했다는 소문을 들은 적은 있었지만, ‘봉강 정해룡’이란 이름은 이 책 관련 기사를 읽으면서 알게 되었다. 봉강은 일제강점기에 태어나서 사립학교를 세우는 등 육성사업을 하였고, 해방 후 3천 석이나 되는 땅을 소작인에게 무상으로 나누어 주었다. 여운형 선생이 만든 근로인민당의 재정부장이 되어 돈줄 역할을 하면서 재산은 거의 사라졌다고 한다.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51092742
이 책은 일제강점기, 해방, 한국전쟁과 분단, 독재와 민주의 싸움 과정에서 봉강에 의해 그 집안 사람들이 어떤 영향을 받는지를 보여준다. 봉강이 태어나고 생활한 보성군 회천면 봉강리는 장흥군과 경계이다. 이 마을은 행정구역은 보성이지만 장흥 생활권이다. 보성군수의 사위인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 때 12척의 배로 수군을 부흥시킨 율포항에서 가깝다. 한말 보성 동학농민군이 장흥으로 갔던 길목이고, 장흥 석대들에서 패한 농민군이 보성으로 숨어들었던 길목이기도 했다.
보성은 보배보(寶) 재성(城)인데, ‘봇재’에서 나온 말이다. 율포항에서 왜구 등 외부 세력이 보성으로 가려면 봇재를 넘어야 했다. 보성은 왜구 등 외부 세력을 막기 위해 전략적 요충지이었기에 수령은 주로 무관이 임용되었다. 이는 조선시대에 전라도 다른 지역 수령은 대부분 문관이었던 것과 비교된다. 보성군 회천면은 서울에서 보면 한반도의 꼬리이지만, 태평양을 바라볼 때에는 한반도의 머리에 해당된다.
보성지역은 일제강점기에 소작쟁의가 왕성했고, 해방후 농민운동과 혁신계 활동이 활발했다. 소설 태백산맥을 통해 벌교와 그 인접지역의 활동은 널리 알려졌는데, 정해룡 평전을 보면 회천면도 혁신계의 활동이 활발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필자의 연구에 따르면, 일제강점기의 소작쟁이와 해방후 농민운동은 조선시대말 의병활동과 연결되어 있다. 예컨대, 조선시대말 문덕면 법화마을 뒷산 동소산에서 창의한 안규홍 의병장은 임진왜란 안방준 의병장의 후손이었다. 일제강점기에 율어면의 소작쟁의는 동소산 주변에서 의병을 한 후손들의 활동과 연결되어 있다. 봉강 정해룡 선생은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의 종사관을 지낸 반곡 정경달의 후손이라는 점에서 비슷하다. 정해룡과 집안 사람들이 ‘역사의 죄인이 되지 말라’는 신념을 지키다보니, 실정법을 어긴 경우도 생긴 것으로 보인다. 역사의 죄인이 되지 않기 위한 통일운동은 분단상황에서 현행 법률을 위반할 수도 있었다.
이 책은 일제강점기와 분단시대에 정해룡 선생과 집안사람의 파란만장한 삶을 담고 있다. 이데올로기와 정치이념이 다른 사람들끼리 이합집산하면서 한 집안과 마을사람들이 겪은 이야기를 볼 수 있다. 당시 한반도 다른 지역에서도 유사한 일이 벌어졌다. 흔히 전쟁은 주로 전선에서 일어난 것처럼 생각하기 쉬운데, 해방후 국가건설과정에 벌어진 싸움은 마을에서 일어난 경우가 많았다. 유력한 집안사람들끼리 싸운 경우도 있고, 심지어 한 집안에서도 신념이 다른 형제들끼리 싸운 경우도 적지 않았다.
저자 문영심이 이 책을 저술한 것은 봉강의 여섯째 아들 정길상 선생이 30여 년간 자료수집을 한 덕분이었다. 형이 사형당하고 본인도 감옥살이를 한 후 집안 자료를 정리하고 주변 인물을 인터뷰하였기에 이 책이 집필될 수 있었다. 관심있는 분은 이 책을 꼭 읽기 바란다. 정치가 바로 서지 않아 나라가 어지러워지면 사람들이 어떤 고통을 받게 되는지를 알려준다. 또한 혼탁한 세상에서도 열심히 살아온 사람들의 열정을 느낄 수 있다. 한 시대를 개척하는 어른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해주는 책이다.
이용교/ 복지평론가, 광주대학교 교수 ewelfare@hanmail.net